실리콘밸리는 지금 '제왕적 CEO' 시대…앤스로픽·메타 등 창업주 지배력 강화
실리콘밸리의 주요 기술 기업들이 차등의결권 등을 통해 창업주에게 압도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제왕적 최고경영자(CEO)'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신문은 최근 역대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가 예상되는 인공지능(AI) 거물 기업 앤스로픽의 상장 서류가 공개되면서 이 같은 경향이 명확해졌다고 전했다. 해당 투자설명서에는 7명의 창업주에게 잠재적 투자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 강력한 의결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상세히 담겼다.
앤스로픽의 방식은 독특하지만 그 효과는 새롭지 않다. 지난 6월 상장한 스페이스X는 차등의결권 구조를 통해 일론 머스크에게 로켓 제조 및 AI 연구소에 대한 거의 전적인 통제권을 부여했다. 메타 플랫폼 이사회 역시 최근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의결권이 없는 새로운 주식을 발행하기로 했다고 매체는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은 거대 기술 기업의 권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시점에 AI 발전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외부 감시로부터 한층 더 자유로워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통상적인 '1주 1의결권' 원칙과 달리, 일부 기업들은 특정 주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다중의결권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과거 상장사들 사이에서 드물었던 이러한 소유 구조는 월가에서 100년 넘게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유망 기술 기업들 사이에서 창업주 보호 장치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 신문은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FOMO)에 사로잡힌 투자자들에게 조건을 강요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기술 리더들이 이 같은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불평등한 의결권은 기술 거물들이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파괴적인 비전을 추구하며 점점 더 큰 위험을 감수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 리더의 판단이 옳다면 투자자들은 막대한 부를 얻겠지만, 틀렸을 경우 이를 바로잡을 영향력은 거의 없다. 많은 퇴직연금과 연금 계획이 이들 기업에 투자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이 위험한 여정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투자자들이 큰 보상을 받은 사례도 있다. 메타 주주들은 2012년 IPO 당시 38달러였던 주가가 1,500% 이상 상승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신문은 짚었다. 특히 저커버그가 검증되지 않은 메타버스 기술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을 때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저커버그는 차등의결권 덕분에 궁극적인 통제권을 유지하며 도박을 이어갈 수 있었고, 이후 AI로 방향을 틀 때도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러한 '창업주 모드(Founder Mode)'의 자신감을 예찬하며, 이를 이사회나 주주의 눈치를 보는 전문 경영인은 할 수 없는 창업주만의 역량으로 간주한다. 메타 이사회가 최근 저커버그에게 의결권 없는 주식을 발행하기로 한 결정에서도 이러한 숭배가 드러난다.
이는 오는 11월 3일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이 억만장자세를 승인할 경우 저커버그가 직면할 개인적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다. 연봉으로 1달러만 받는 저커버그는 세금을 내기 위해 의결권 주식을 매각해야 할 상황에 처하자, 자신의 의결권이 60.6%에서 53%로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하며 본사 이전까지 시사하며 이사회를 압박했다. 결국 이사회는 이를 수용했다. 메타 측은 10월 21일 공시를 통해 "저커버그가 의결권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모든 이사가 회사 업무에 의미 있게 참여하며 솔직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제왕적 CEO 구조의 부정적인 측면은 메시징 앱 스냅(Snap)의 사례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53.1%의 의결권을 가진 공동 창업자 에반 스피겔은 수년 동안 스마트 안경 사업에 집착해 왔으나,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주가는 2017년 IPO 가격 대비 70% 가까이 하락했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사업 중단을 압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피겔의 통제권 때문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과거 S&P 다우존스 지수는 차등의결권 기업의 지수 편입을 금지하기도 했으나, 2023년 이 금지 조치를 철회했다. 2018년 당시 로버트 잭슨 주니어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은 "투자자들에게 기업의 왕족을 영원히 믿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일론 머스크 역시 통제권 문제에 집착해 왔다. 테슬라에서 그는 야심 찬 목표 달성 시 더 많은 주식을 받는 보상안을 관철시켰다. 2010년 상장 당시 테슬라는 구글이나 메타처럼 월가의 총아가 아니었기에 차등의결권을 도입하지 못했으나, 현재 머스크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합병을 검토하며 자신의 통제권을 더욱 공고히 하려 하고 있다.
앤스로픽의 경우 AI 안전 관련 결정이 시장의 요구에 휘둘리지 않도록 국가 안보 및 공공 정책 전문가들로 구성된 '장기 이익 신탁'에 이사회 통제권의 상당 부분을 부여하는 독특한 구조를 택했다. 그러면서도 CEO 다리오 아모데이 등 창업주들은 특별 주식을 통해 50.1%의 의결권을 유지한다. 앤스로픽은 창업주 그룹이 회사의 사명을 완수할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결국 투자자들에게 이들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은 창업주의 통치에 투표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이 글은 WSJ 보도를 바탕으로 KRXVIZ가 한국어로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기사 원문의 저작권은 WSJ에 있으며, 전문은 원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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